장승·솟대 자료실

장승이란?

하늘땅1 2008. 9. 16. 15:24

하나.  장승이란 ? 
 
 민속문화는 거의 신앙적인 요소를 띠고 있으며, 여기에 신성(神性)이 생김으로써 제의(祭儀)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제의를 통해 개인이나 공동체로서의 운명을 신에게 위탁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구전된 신화, 민담 또는 각 마을에 이어져 내려오는 신역(神域)으로 남아 우리에게 보이고 있다.
  장승 역시 국사당,당산,산신각,당산나무(神木),서낭당 등의 당제(堂祭)행사와 돌무더기,선돌,솟대 등의 입간습속(立竿習俗)이나 무속신앙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 민속문화의 소산으로써 그 구체적 신상과 제사,고사,굿 등이 오늘날까지 전승 발전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장승'이라 부르고 있는 조형물은 크게 법수계와 장승계로 나눈다. 그러나 오늘날 법수계와 장승계로 나누지 않고 '나무나 돌로 만든 기둥 모양의 몸통 위쪽에 신이나 장군의 얼굴을 새기고, 몸통에는 역할을 나타내는 글을 써서 길가에 세우는 신상으로서 위협적인 수호신장이거나 진압신 또는 노신 등의 기능을 가진 민속시앙의 대상인 주물'이 장승이라는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둘. 장승의 기원 및 어원
  삼국시대에 이미 불교는 왕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 국가의 호국신앙으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점차적으로 풍수지리설과 도참설 역시 산천비보 사상과 함께 중요한 종교적 사상으로 변하여 왔다.
  신라말의 도선국사는 이러한 비보로 500군데에 사찰을 세웠으며 뿐만아니라 사찰 일대 오방(五方)에 산천을 비보한다고 하여 기지(基地)를  선정하였으며 기지의 오방(동,서,남,북,중앙)에 장생(長生)을 세움으로써 방위에 대한 제의적 기능과 더불어 국가비보 사찰임을 표시하였다.
  이러한 장생(長生)은 도갑사 장생의 명문 '국장생(國長生)','황장생(皇長生)' 등을 미루어 보아 국가나 황제의 장생(長生)을 기원 하기 위해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중기 이후에는 제정의 어려움으로 비보사찰의 건립이 어려워 졌으며 장생표도 세우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유교를 국교로 정하고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이 사찰에서 장생을 세울 이유가 없었졌으며 남아 있던 장생표의 기능조차도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장생(長生)은 원시 민간신앙이 수호신상인 법수의 장생불사 사상과 결합하여 새로운 신상을 이루어 읍락 비보상이나, 사찰의 법역 청정을 지키는 호법상으로 변모하면서 형태도 기둥형,비석형,돌무더기형에서 선인이나 귀면 같은 얼굴 있는 우상형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신라 소지왕 때(487년)에 옛길을 넓혀 관도(國道)를 사방으로 닦고 우역(郵驛)을 두었으며,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역참(驛站) 사이의 정확한 이정을 표시하기 위하여 10리 마다 소후(路標-흙무더기). 30리 마다 대후를 두고 그 위에 이수(里數)를 쓴 노표기둥을 세웠으며 이러한 후기둥에 역신의 횡포를 막고 호귀와 사귀의 내침을 막기위해 위쪽에 얼굴을 새겨 넣어 길을 지키게 한 뒤부터 이를 기존의 장생(長生)과는 달리 나무 '木'자를 더한 장생(長木生)이라 불렀으며 이러한 생(木生)자는 중국에서 온 한자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이다.
  이러한 '장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번성기를 맞이 하였으며, 조선중기에 와서는 '장승'(長丞,長承) 또는 '장성'(長性,長城), '장선'(長善) 등으로 와전되었고, 15세기어로는 '당승'이었으며, 16세기에 '쟝승'으로 변했다가 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 의하여 '장승'이 표준말로 되었다.

 

 

 셋. 장승의 기능별 분류
  장승은 맡은 바 임무(기능)에 따라 이름이 구별되고, 명문과 생김새, 서있는 위치 또한 달라진다.
 이렇듯 기능,명문,형태,위치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근본이 기능이라 하겠다.
 

구 분

기 능

명 칭

대표 장승

소재지 - 재질

명 문

부락 수호

흉년,재앙,유행병등을 가져오는귀신이나 역신을 쫓아 냄.

법수,벅수,장신

영동군 용산면 유리 - 목벅수

명문 無

공주군 반포면 상신리 - 목장승

天下大將軍,地下大將軍

청양군 대치면 대치리 - 목장승

天上天下逐鬼大將軍

승주군 송광면 대흥리 - 목장승

명문 無

무안군 몽환면 총지마을-석장승

명문 無

정읍군 칠보면 원백암리-석장승

명문 無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 석장승

명문 無

부안군 부안읍 서문안 -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부안군 부안읍 동문안 - 석장승

下元唐將軍

대전시 읍내동 - 석장승

天下大將軍,地下大將軍

방위 수호

방위가 허한 곳에 각 방위에해당하는 오방신장을 배치하여 각 방위를 지킴.

법수,벅수,장생,장승

공주군 우성면 어천리 - 목벅수

東方靑帝逐鬼大將軍之位

광주군 초월면 무갑리 - 목장승

北方黑帝將軍

공주군 탄천면 송학리 - 목장승

東方大將軍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 목법수

東方大將軍,西方大將軍

남원군 운봉면 북천리 - 석장승

西方逐鬼將軍

남원군 운봉면 서천리 - 석장승

大將軍

산천 비보

풍수도참설에 의하여 국기의연장과 군왕의 장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찰주위에 세움

장생표(長生標)-얼굴無

양산군 하북면 통도사-석장생표

國長生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석장생표

國長生,皇長生

읍락 비보

고을과 마을의 지맥이나 수구가 허한 곳을 다스리기 위해 세움.

법수,벅수,장생,장승, 수구막이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 석장승

靜界大將軍

충무시 문화동 - 석벅수

土地大將軍

장흥군 관산면 방촌리 - 석장승

鎭西大將軍

불법 수호

사찰 입구에 세워 경내의 청정과 존엄을 지캐게 함.

장생(長生),장승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 목장승

護法大神,禁護將軍

승주군 승주읍 선암사 - 목장승

護法善神,放生淨界

남원군 산내면 실상사 -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나주군 다도면 불회사 -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나주군 다도면 운흥사 -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상주군 내서면 남장사 - 석장승

下元唐將軍

경계표

농경과 수렵 및 땔감을 얻는땅의 경계를 표시 함.

장생(長生),법수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석장생표

國長生,皇長生

노표

이정표 및 방두의 노신을 검했던 제도적 장생

장생,장승,후

광주군 중부면 엄미리 - 목장승

天下大將軍,地下女將軍

광주군 중부면 하번천리-목장승

天下大將軍,地下大將軍

성문 수호

중국에서 오는 역병이나 재앙의 침입을 성문에서 제지함.

벅수,장승,우석목

남제주군 대정읍 - 돌하르방

명문 無

장흥군 관산면 방촌리 - 석장승

鎭西大將軍

기자

득남과 풍요를 기원함.

벅수,남금석 등

사천군 축도연 가산리 - 석벅수

명문 無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 - 남근석

명문 無

 

 

넷. 장승의 의미
  장승은 우리 겨레의 얼굴이다. 험상궂으면서도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위엄을 품고 있는 그 표정에서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겨레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도 상징물은 있기 마련이다. 장승은 바로 우리 겨레의 상징물이며, 벅수,돌하르방 따위는 모두 장승의 가족들이다.
  사람들은 장승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빈다. 또 장승은 오가는 길손의 길 떠남을 보살펴 주기도 한다.
  장승의 넉넉한 표정과 장승제를 통하여 공동체적인 나눔의 정신을 이해하게 될 때, 민족문화의 의연한 세계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 대원사 - 빛깔있는 책들 : 19 장승과 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