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지킴이 ‘장승’
툭 튀어나온 눈, 주먹만한 크기의 코, 들쑥날쑥 톱날처럼 생긴 이, 귀밑까지 찢어진 입…….
예로부터 ‘마을의 수문장’으로 불리는 장승의 모습입니다. 무척이나 못생기고 무서운 모습의 장승은 대개 마을 어귀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왜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워 두었을까요? 잡귀ㆍ재앙ㆍ전염병을 몰고 오는 역신을 겁주어 쫓아내기 위해서랍니다.
장승은 대개 나무로 만들었고, 몸 기둥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나 ‘地下女將軍’(지하여장군)이라고 썼어요.
나무로 만든 장승은 세월이 지나면 썩기 때문에 지금은 박물관 등에서만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가운데 나주의 불회사 돌장승 표정은 조선 후기 백성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답니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뿐 아니라 이정표 역할을 하고,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보통 10 리나 30 리마다 세워, 길을 안내했던 것이지요. 장승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에서 어느 방향으로 몇 리 떨어져 있고, 이웃 마을 이름이 무엇인지를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한편 장승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라도나 경상도는 ‘벅수’,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이라 부르지요. 또 동네 장승이 서 있는 곳을 장승배기라 부르는데, 이는 ‘장승이 박힌 곳’이란 뜻입니다.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가 대표적이지요.
행운과 풍요를 상징하는 ‘솟대’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신이 솟대를 통해 오르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솟대를 세워 하늘을 섬기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던 것이지요. 솟대 끝에 앉아 있는 새는 풍요를 상징하며,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를 이어 주는 심부름꾼으로 여겼습니다.
솟대는 장승보다 더욱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기원이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솟대는 나무나 돌로 새를 만들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혔습니다. 마을 입구에 홀로 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장승 등과 함께 세웠지요.
솟대의 새는 대개 오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물새인 오리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다 주거나, 홍수를 막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리는 또한 풍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ㆍ기러기ㆍ갈매기ㆍ따오기ㆍ까치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새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구려 벽화를 보면 태양을 상징하는 까마귀인 삼족오가 있지요. 박혁거세 신화를 비롯해 많은 건국 신화에 ‘알’이 나타나는데, 알도 새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통 혼례식 때 닭을 올리는 것도 새가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이렇듯 솟대와 장승은 오랜 기간 조상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으로 함께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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