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솟대 자료실

장승의 기능별 분류 2

하늘땅1 2009. 12. 2. 09:48

 

5. 성문 수호 장승

마을로 들어오는 역병이나 재앙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문 좌.우에 세우는 성문 수호 장승의 대표 장승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제주도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돌하르방을 들 수 있다.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돌하르방 명문無

 

제주도내에 있는 돌하르방은 장승의 일종으로서, ‘우석목’, ‘무석목등으로 불려지다가 1970년대부터 제주어로돌하르방이라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제주목(濟州牧), 정의현(旌義縣), 대정현(大靜縣)의 성문(城門) 입구에 세워졌던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벙거지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눈, 큼지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과 두손은 배 위에 아래로 위엄 있게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돌하르방의 크기는 평균 신장이 제주 187cm, 성읍 141cm, 대정 134cm이며 제작년대는 영조(英祖) 30(1754)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
정의현성 동문입구에 세워진 돌하르방의 높이는 121~160㎝로서 각기 다르다. 이 석상은 동문 앞 좌우에 각각 2기씩 세워져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주술종교적 의미와 도읍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경계 금표적 기능을 하였다.


 

 

 

6. 불법 수호 장승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내의 청정과 존엄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 받은 불법 수호 장승들은... 동네에서 나름 손재주을 인정 받은 아마추여 장승꾼들에 의해 세워진 투박한 마을 장승들과 달리, 대부분 사찰내 불상이나 석탑, 사천왕상 등을 제작하던 전문가의 손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그 작업 기술 및 예술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 – 목장승 護法大神 禁護將軍

벽송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양쪽에 마주보고 서 있는 한 쌍의 목장승이다.

잡귀의 출입을 금하는 기능과 함께 불법을 지키는 신장상(神將像)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2기 모두 몸통이 절반 가량 땅 속에 묻혀 있어, 드러난 높이가 2m 내외이고, 그나마 한쪽 장승은 윗부분이 불에 타 파손이 심하다.

구전에 의하면 약 70년 전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목장승으로서는 시대가 오래되어 보기드문 모습이다. 비록 눈,,입이 과장되게 표현되긴 하였으나 순박한 인상을 주고, 무서운 듯 하면서도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질박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호법대신(護法大神)

 

대체로 잘 남아 있는 오른쪽 장승은 대머리에 크고 둥근 눈이 돌출되었다. 코 주위에 깊은 선을 둘러 뭉툭한 코가 더 두드러져 보이며, 꽉 다문 입 주위와 턱 아래에는 톱니 모양의 수염을 묘사해 놓았다. 몸통에는 ‘호법대신(護法大神:불법을 지키는 신)’이라는 이름을 새겨 놓았다.

 

금호장군(禁護將軍)

머리의 일부가 불에 타버린 왼쪽 장승은 눈 한쪽과 코의 가운데 부분이 파손되었다. 남아 있는 눈은 크고 둥글며, 입은 다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 짧은 수염을 표현하였다. 몸통에는 ‘금호장군(禁護將軍:경내에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는 장군)’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남원군 산내면 실상사 –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실상사의 석장승은 사찰 입구에 세워진 대표적인 장승 중에 하나이다. 실상사 석장승은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1, 해탈교를 건너 2기가 서 있다. 사찰에다 장승을 세우는 이유는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원래는 절 앞으로 흐르는 냇가 두 곳에 4기의 장승이 세워져 있었으나 홍수로 그 중 1기가 떠내려가고 말았다. 이들은 벙거지와 같은 모자를 쓰고, 큰 눈과 큰 코를 가진 무서운 인상의 장승들인데, 그 특징들이 서로 비슷하게 표현된 점으로 보아 한 사람에 의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제작되었다. 중요민속자료 제15호이다

 

옹호금사축귀대장군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서 있는 장승이다. 원래는 마주보고 있는 돌장승이 하나 더 있었는데 홍수로 유실되었다. 높이는 약 3m이며 둘레는 1.18m, 두께는 40cm로 보기 드물게 큰 장승이다.





大將軍

해탈교를 건너면 돌장승 2기가 세워져 있는데, 그 가운데 왼쪽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장승이 대장군이다. 높이는 2.5m이다.




 

上元周將軍 

해탈교를 건너 대장군과 마주보고 있는 것이 상원주장군이다. 높이는 2.5m이다.

 

 




전남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 석장승 上元周將軍 下元唐將軍

운흥사는 덕룡산 기슭에 있는 절로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 원래 40여 개의 전각이 있던 규모가 큰 사찰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어 본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곳 입구 길가에는 2기의 석장승이 서있는데, 우측이 여장생, 좌측이 남장생이다. 사찰 앞에 세워진 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을 한다. 특히 여장승 뒷면에는 1719년에 만들어졌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민속자료이다. 대부분의 민속자료가 제작연대를 알지 못하는데 반하여, 이 장승은 제작연대가 명기되어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민속신앙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남장승 - 각지지 않은 둥그스름한 몸통을 하고 절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가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높이 2.07m이다.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여장승 - 남장승보다 섬세하게 조각되었는데 모자는 없고 머리가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모습이다. 높이는 2.01m이다.

 

 

전남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 – 석장승 下元唐將軍 周將軍

불회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좌우에 있는 2기의 장승으로 오른쪽이 남장승이고, 왼쪽이 여장승이다. 일반적으로 남장승이 상원주장군, 여장승이 하원당장군이라 불리는데, 불회사 석장승은 반대로 남장승 전면에 '하원당장군', 여장승 전면에 '주장군'이라 음각되어 있다.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이 석장승은 불회사의 인근에 있는 운흥사 석장승의 조각형태와 수법이 비슷한데, 운흥사 석장승에 1719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불회사 장승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 높이는 2.3m이다.


 

주장군(周將軍)

몸에는 '주장군'이라 새겨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1.7m로 남장승보다 작다. 남장승에 비하여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이다.


 

   

경북 상주군 내서면 남장사 석장승 下元唐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남장사 입구에 서 있는 이 돌장승은 원래 남장동에 있었는데, 1968년 저수지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높이 186㎝의 크기로,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다듬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비뚤어진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과 커다란 주먹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송곳니는 아래로 뻗어있다. 가슴에는 한가닥의 수염이 있으며 그 밑에하원주장군(下元周將軍)’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성난 표정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 보다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이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제작년도는 장승 앞면에임진 9월입이라는 기록과 조선 철종 7(1856)에 지은 남장사 극락보전 현판의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순조 32(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장사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없으므로 남장동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서 이 장승을 세운 듯하다.

 


7. 영역표시(경계표) 장승

 사철 등의 농경과 수렵 및 땔감을 얻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장승들로 불법 수호 장승들과 임무 및 세워진 위치가 흡사하여 서로 사촌 지간이라 할 수 있다.ㅎㅎ

 

무안군 몽탄면 대치리 총지사지 - 석장승 명문無

 

 

 

총지사터 입구 양 옆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돌장승으로, 절의 영역표시 기능과 더불어 경내에서의 수렵·어로 등의 금지를 알리며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상의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화강석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려 아무런 조각이 없는 민둥머리와 이마, 커다란 왕방울 눈, 우뚝 솟은 주먹코와 작은 입이 조각되어 있다. 두 장승의 모습이 거의 비슷하나, 남장승은 외수염을 하나 더 조각해 두었다
.
장승의 앞에는 각각 넓직한 판돌의 제단이 놓여 있으나, 장승과 관련된 의례는 전하지 않고, 다만 할머니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소원을 비는 곳이라 한다
.
조선 현종 7(1666) 지금의 총지사를 중건하면서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쌍계사지 석장승 명문無

쌍계사터 입구에서 4005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2기의 돌장승으로, 사찰내의 살생과 수렵을 금하게 하고, 사찰의 재산이나 경계를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석인 화강암을 잘 다듬지 않은 채 얼굴만을 조각하였고, 몸체에는 각각 당장군’ ‘주장군이라 새겨 놓았다.
  

 

당장군은 높이 247, 둘레 175㎝이고, 주장군은 높이 345, 둘레 210㎝로 되어있다. 머리에는 말아 올린 듯한 짧은 테의 중절모가 씌여 있으며, 튀어나올 것 같은 둥근 눈, 넙적한 주먹코에 입술은 꼭 다물어진一자모양이고, 얼굴 전체에 입체감을 잘 살려 표현한 뛰어난 조각품이다. 인상은 힘센 장군의 형상과 같으며, 여기에 괴기스러움까지 지닌 악귀를 쫓는 상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정확한 제작년도는 알 수 없으나, 쌍계사의 창건·중건 연혁과 연관하여 13세기나 15세기 중엽으로 보기도 하고, 나주의 운흥사(1719) 불회사 석장승이 건립된 18세기 중엽으로 보기도 한다
.
절을 수호하는 의미의 유물로, 불교가 민간신앙을 받아들인 예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