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이랑 솟대랑

내가 생각하는 장승은..

하늘땅1 2009. 12. 16. 10:26

 2009년4월, 더 없이 좋은 따사로운 봄날의주말.. 예전 같으면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기바빴을 내가 겁도 없이 인사동에서 장승 전시회를 열겠다며 쥐 죽은 듯 집안에만 쳐 박혀 장승 깎기에 열심이다.

 지 좋아 하는 일이니 딱히 고생이랄 건 없겠지만, 가끔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하고 살짝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09년4월 인사동 장승 전시회 ▶

                                               

 내가 장승 깎기를 시작한 건 대학 3학년, 뒤늦은 군입대를 앞두고서 시골 본가에 내려갔을 때였다. 지루함도 떨쳐 버리고 군입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없앨 겸해서.. 본가에 장승 한 쌍을 깎아 세운 것이 장승과의 첫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깎아 세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사진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참 기특하다 싶을 정도로 크기도 크고 나름 자세도 좀 나왔었다.ㅎㅎ                    

 그리고 군생활.. 상병 고참 서열에 들었을 때 쯤, 시간 때우기 용으로 향나무를 가지고 장승을 깎으며 놀다가 고참들과 소대장, 중대장 그리고 인사계 눈에 띠며 왕고생의 시작... 에고에고~ 마땅한 장비도 없이 조그만 톱과 커터칼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 무작정 장승을 깎아야만 했다. 제대하는 고참들에겐 제대 축하 선물로 한 쌍씩.. 소대장을 포함한 지휘관들에겐 본인용 & 상납용으로 장승 지휘봉을 몇개씩...ㅠㅠ 암튼, 그리하여 군제대 후에는 장승에 '장'자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ㅎㅎ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장승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싹트기 시작하고...  휴가를 맡거나 일이 생겨 시골 본가에 내려가게되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적당한 나무를 찾아와 뚝딱뚝딱 장승을 깎게 되고...                  

00년9월 본가에 깎아 세운 장승들..

 

 가끔씩 내가 취미로 장승을 깎고 있다는 사실을 안지인들의 소개나 부탁으로 농원이나 펜션 등을 찾아가 장승을 깎아 세워 주고 숙식을 제공 받는 장승깎기 가족여행도 심심찮게 다녔었다.

 02년5월 소양예술농원 장승 깎기 여행 ▶

                                    

 혼자놀기에 진수를 보여줬던 장승 깎기 취미생활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족 모두가 함께 하고 건강도 챙 길 수 있는 가족산행  이란 새로운 분야로 잠시 작전을 변경..^^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가족산행 대표가족으로써의 산행을 시작, 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찾아 산행을 즐겼다. 또한 가족산행 초기에 겪었던 남 모를 어려움들 때문일까? 다녀 온 산에 대한 산행정보와 함께 가족산행 노하우 등을 제공하는 가족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월간 산행 잡지인 ‘사람과 산’에 가족 산행기도 2년 넘게 연재를 하였었다.

  03년~05년 월간 ‘사람과 산’에 산행기 연재   

 

  그러던 중 큰아이 민주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 모두의 가족산행은 자연스럽게 빠이빠이~~  다시 시작한 나만의 취미생활 장승깎기...

 아파트에 살다보니 끌을 쳐서 작업해야 하는 크기의 장승을 깎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꼼지락꼼지락 소품 장승들을 깎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함께하게 된 인터넷 상의 목공예 동호회인 [느낌이 있는 나무] 활동... 주로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모임이지만 취미가 비슷한 분들과 같이 하다 보니 작업에도 탄력이 붙고 실력도 부쩍 늘어서 2007년부터는 매년 동호회전에 참석, 부족한 실력이지만 남들에게 내가 깎은 장승들을 선보이는 경험을 쌓았고.. 드디어 올 봄 4월엔 목공예 고수들도 부담감을 느낀다는 인사동 한복판에서 장승 개인전시회를 갖으며 나만의 장승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장승 공예가로써의 자리에 한 계단 올라 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장승은...

 사실, 장승은 나뿐 기운과 액을 막고 잡귀들로부터 마을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모습이나 크기가 무섭고규모가 있어 나름 포스가 느껴져야 장승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어찌하지 못한 장승들은 이제 마을 입구에서 쫓겨나 어느 음식점의정문 앞이나 가정의 장식장 속.. 그리고 누군가의 핸드폰과열쇠고리에 매달려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 취급받는 신세로 전락(?)한 장승들이 여럿이다. 물론, 소품이라 하더라도 주인을 잘만나 주인의 신망을 얻으며 부적처럼 나름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똘똘한 장승들도 있겠지만 다수의 장승들은 신령스런 기운과 신통력을 잃어버린 채 자신이 위치한 작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하게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장승들에게 있어 장승 정체성을 상실한 총체적 난국(?) 상황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한반도의 대표적 풍물인 장승들이 요즘같이 백성 무서운 줄 모르고 막나가는 정치판... 살림살이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빽없고 힘없는 우리네 삶에 친구처럼 아버지처럼 다정하고 듬직하게 자리매김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